이호원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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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의 가장 기본적 의무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분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그로써 일단 일어난 분쟁을 딛고 넘어서 다음 단계의 사회적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는 기초를 제공하게 됩니다. 이를 위하여 조정과 중재 등 각종의 분쟁해결수단이 마련되어 있고, 최종적으로는 법원의 소송절차와 그 결과물인 판결에 의하여 해결하게 됩니다. 이러한 각종 분쟁해결수단 중 가장 원칙적이고 다른 모든 분쟁해결수단의 절차진행에 있어서 기준이 되는 것이 민사소송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민사소송절차를 어떻게 구성하는가는 단순한 민사분쟁의 해결방법이라는 차원을 넘어서 전사회적 분쟁해결의 기본적 절차로서의 의미를 지니며 우리 문화와 여건에 맞는 절차를 마련할 필요성은 지대합니다.
그러면 어떠한 절차가 가장 바람직한 모습일까요. 연전에 서울대 철학과 명예교수이신 소광희 교수님의 신문칼럼에서 우리 사회가 정직한 사회를 이루지 않는 한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하시면서 거짓말이 많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에 발전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글을 읽고 감명을 받은 바 있습니다. 필자로서는 민사소송에 있어서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 서로 가진 자료를 공유하면서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기존의 분쟁을 법정에 가져오더라도 다시 소송이라는 게임을 거쳐야 하는 사회적 부담을 가장 줄이는 방안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사회의 공식적이고 최종적인 분쟁해결의 장인 법정에서 진실된 주장과 증거들만이 나오도록 소송절차를 구성하는 것이 가장 사회적 비용을 줄이면서 올바르고 신속하게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세계 각국도 기본적으로는 이러한 이념을 전제로 소송절차의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며, 구체적인 성과로는 대법원에서 주도하여 2002. 1. 26. 법률 제6627호로 전문개정된 민사소송법을 들 수 있습니다. 그 개정은 전문개정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민사소송법 전분야에 걸친 전면적인 개정이며, 이로서 우리로서는 선진적이면서도 한국적인 민사소송법을 지니게 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며, 단순히 법학계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질적인 향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정 민사소송법 중 가장 중요한 점을 두가지 든다면, 첫째 심리의 충실과 효율을 꾀하기 위하여 제1심 소송구조를 대폭 개편한 점을 들 수 있습니다. 피고의 답변서 제출의무를 인정하면서, 공식적인 변론절차에 앞서서 변론준비절차, 즉 반드시 서면준비절차와 변론준비기일를 단계적으로 거쳐서 철저히 변론을 준비한 뒤에만 변론을 열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둘째는 효율적이고 충실한 증거조사를 위하여 문서제출명령제도에서 문서제출의무를 증인의무와 같이 일반의무로 확대하고, 이를 위한 문서정보 공개제도를 신설한 점입니다. 이 두가지는 보다 신속히 당사자의 주장을 파악하고, 증거확보수단을 확충하여 진실을 밝히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이는 다른 선진제국의 민사소송제도와 비교하여 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진실된 법정을 만들기에는 가장 중요한 점 두가지만 먼저 지적하고자 합니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소송당사자 및 제3자가 사실관계의 해명에 협력하여야 한다는 이른바 일반적 사안해명의무를 지워야 한다는 점입니다. 바람직한 소송의 모습은 소송 중에 원고와 피고가 각자 지니고 있는 증거방법을 교환하여 무기대등의 상태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법원의 인정사실이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도록 하기 위하여서는 제3자가 지닌 자료를 강제로 제출하게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들 작업이 완전하게 행하여진 때 쌍방 당사자의 사실인식은 대체로 일치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판결이 불필요하게 되든가 화해율이 최대로 높아질 것입니다. 우리 민사소송체계가 채택하고 있는 변론주의는 당사자가 이미 사실을 알고 있고 증거도 가지고 있든가 가지고 있지 않으면 입수가 가능한 때 비로소 올바르게 기능하는 것입니다. 이 전제조건이 결여된 경우에 본안판단에 필요한 한 상대방에 대하여 그에게 불리한 자료를 포함하여 그가 가지고 있는 증거를 제출할 의무를 지게 하고, 또 제3자에 대하여서도 사법에 대한 협력의무로서 필요한 모든 정보와 증거방법을 제출할 의무를 지게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또 한가지는 앞서 든 일반적 사안해명의무를 당장 도입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에 앞서 증거수집절차를 확충하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는 시급한 과제로서 이를 통하여 앞으로 사안해명의무의 도입을 위한 밑받침을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사자 사이의 자주적인 증거수집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가 완비된다면 사건에 관한 풍부한 정보, 자료 및 증거를 토대로 실체적 진실발견이 보다 용이해 질 가능성은 자연스럽게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미국의 디스카버리제도나, 독일의 독립적 증거조사제도의 도입을 적극 검토하여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소송의 개선이라고 하는 과제, 특히 진실된 법정을 만들기 위하여서는 법원뿐만 아니라 소송관계자 전원의 이해와 노력, 특히 소송대리인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변호사의 이해와 협력이 없으면 해결할 수 없을 것이므로, 법관 및 변호사가 법조로서의 높은 윤리관을 지니고 민사소송의 개선이라는 과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변호사들로서는 우리 민사소송법상의 해석상으로도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진실의무, 즉 당사자에게 사실에 관하여 완전하고도 진실하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깊이 자각하고 이에 철저하게 입각한 소송진행을 통하여 진실된 법정을 만들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 이에 관하여 좀더 상세한 논의가 필요하신 분은, 한국법학원 발간 저스티스 2006/7호에 실린 拙稿 “2002年 民事訴訟法의 改正과 앞으로의 課題”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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