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과실에 의한 실화에 대한 불법행위책임 성립을 배제하는 것은 위헌◇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曺大鉉 재판관)는 2007년 8월 30일 일반 불법행위와는 달리 경과실에 의한 실화의 경우에는 민법 제750조의 적용을 배제하고 있는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이하 '실화책임법'이라 한다)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고 선고하면서(단순위헌 의견 2인), 위 법률의 적용중지를 명하였다.
1. 사건의 개요
가. 제청신청인들(이하 '신청인들'이라 한다)과 주식회사 동산화학(이하 '동산화학'이라 한다)은 부산 부산진구 가야동 일대에 있는 가야집단공장에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2003. 6. 15. 03:00경 동산화학 소유 건물의 2층 바닥에 깔린 전선 중 반 단선된 부분의 과열로 전선피복이 탄화되면서 합선되어 화재가 발생하였고, 그 불이 인근에 있던 신청인들의 건물로 번져서 건물과 사무실 집기, 자재, 공장시설 등이 소훼되었다.
나. 신청인들은 2003. 7. 11. 동산화학을 상대로 위 화재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 등을 제기하였고, 위 소송 진행 중 경과실로 인한 실화의 경우에 손해배상청구권을 제한하고 있는 실화책임법이 신청인들의 재산권 등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위헌법률심판의 제청을 신청하였는데, 법원은 그 신청을 받아들여 2004. 8. 31. 이 사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였다.
2. 심판의 대상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1961. 4. 28. 법률 제607호로 제정된 것)의 위헌 여부이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
"민법 제750조의 규정은 실화의 경우에는 중대한 과실이 있을 때에 한하여 이를 적용한다."
3. 결정이유의 요지
가. 실화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의 특별 제한
민법 제750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하여, 과실책임주의를 불법행위와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기본원칙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실화책임법은 경과실로 인한 실화의 경우에는 민법 제750조의 적용을 배제하여 과실책임주의를 수정함으로써 실화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특별히 제한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실화책임법은 불법행위 책임의 일반원칙에 대한 예외로서 실화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특별히 제한하는 것이므로, 헌법 제37조 제2항의 정신에 따라 위와 같이 불법행위 책임을 예외적으로 특별히 제한하는 것은 그 필요성이 인정되는 한도에서 최소한도로 그쳐야 한다.
나. 실화책임법의 필요성과 입법목적
불의 특성으로 인하여 화재가 발생한 경우에는 불이 생긴 곳의 물건을 태울 뿐만 아니라 부근의 건물 기타 물건도 연소(延燒)함으로써 그 피해가 예상 외로 확대되는 경우가 많고, 화재피해의 확대 여부와 규모는 실화자가 통제하기 어려운 대기의 습도와 바람의 세기 등의 여건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그래서 입법자는 경과실로 인한 실화자를 지나치게 가혹한 손해배상책임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하여 실화책임법을 제정한 것이고, 헌법재판소 1995. 3. 23. 선고 92헌가4등 결정이 밝힌 바와 같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실화책임법의 필요성은 여전히 존속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 실화책임법의 합리성·제한최소성·법익균형성
실화책임법은 위와 같은 입법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서, 경과실로 인한 화재의 경우에 실화자의 손해배상책임을 감면하여 조절하는 방법을 택하지 아니하고, 실화자의 배상책임을 전부 부정하고 실화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도 부정하는 방법을 채택하였다. 그러나 화재피해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과실 정도가 가벼운 실화자를 가혹한 배상책임으로부터 구제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실화책임법이 채택한 방법은 입법목적의 달성에 필요한 정도를 벗어나 지나치게 실화자의 보호에만 치중하고 실화피해자의 보호를 외면한 것이어서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리고 경과실의 경우에는 민법 제765조에 의하여 구체적인 사정에 맞추어 실화자의 배상책임을 경감시킴으로써 실화자의 가혹한 부담을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음에도 경과실로 인한 화재의 경우에 실화자의 책임을 전부 부정하고 그 손실을 모두 피해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실화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입법목적상 필요한 최소한도를 벗어나 과도하게 많이 제한하는 것이다.
게다가 화재 피해자에 대한 보호수단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아니한 상태에서, 화재가 경과실로 발생한 경우에 화재와 연소의 규모와 원인, 피해의 대상과 내용·범위, 실화자의 배상능력, 피해품에 대한 화재보험 가입 여부, 피해자의 재산정도 등 손해의 공평한 분담에 관한 여러 가지 사항을 전혀 고려하지 아니한 채, 일률적으로 실화자의 손해배상책임과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부정하는 것은, 일방적으로 실화자만 보호하고 실화피해자의 보호를 외면한 것으로서 실화자 보호의 필요성과 실화피해자 보호의 필요성을 균형있게 조화시킨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라. 헌법불합치결정 이유
이와 같이 실화책임법이 위헌이라고 하더라도, 앞서 본 바와 같이 화재와 연소(延燒)의 특성상 실화자의 책임을 제한할 필요성이 있고, 그러한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하여 실화자의 책임한도를 경감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경과실 실화자의 책임을 감면하는 한편 그 피해자를 공적인 보험제도에 의하여 구제하는 방안 등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방안의 선택은 입법기관의 임무에 속하는 것이다.
따라서 실화책임법에 대하여 단순위헌을 선언하기 보다는 헌법불합치를 선고하여 개선입법을 촉구함이 상당하다고 할 것이다. 다만 실화책임법을 계속 적용할 경우에는 경과실로 인한 실화피해자로서는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되는 위헌적인 상태가 계속되므로, 입법자가 실화책임법의 위헌성을 제거하는 개선 입법을 하기 전에도 실화책임법의 적용을 중지시킴이 상당하다.
이 결정과 달리 실화책임법이 헌법에 위반되지 아니한다고 결정한 헌법재판소 1995. 3. 23. 선고 92헌가4등 결정은 이 결정의 견해와 저촉되는 한도에서 변경한다.
* 재판관 이동흡의 보충의견
실화책임법과 같이 경과실로 인한 실화의 경우 일률적으로 실화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완전히 부정하는 입법례는 실화자에게 민사상의 배상책임을 지우지 않는 관습이 형성된 일본 이외에는 유례가 없다.
특히 우리의 경우에는 일본과 같은 관습도 없을 뿐만 아니라, 실화책임법 제정 당시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화재에 취약한 목조건물이 거의 사라지고 대부분 내화성이 강한 건축양식에 따른 대형 건축물이 들어섰으며, 화재의 조기 진압과 예방을 위한 소방관계법령들이 제정 또는 개정됨으로써 실화자를 가혹한 손해배상책임의 부담으로부터 구제한다는 실화책임법의 필요성도 많이 약화되었다.
또한 실화로 인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광산사고, 독성물질로 인한 사고, 가스유출 및 폭발사고, 제방·도로 등의 파괴로 인하여 손해의 범위가 예상외로 확대된 경우에도 과실책임주의를 관철하거나 무과실책임주의 내지 위험책임주의를 도입하여 피해자에 대한 보상의 확대를 도모하고 있는 현대의 입법추세에 비추어 보더라도 실화피해자의 보호를 외면하고 실화자의 구제만을 우선하고 있는 실화책임법을 유지할 것인가에 대하여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경과실로 인한 실화의 경우 실화피해자에 대한 별도의 보호수단을 전혀 인정하지 아니한 채 일률적으로 실화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 자체를 배제하고 있는 실화책임법은 불의 특성과 실화자의 구제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필요한 정도 이상으로 실화피해자의 재산권을 제한하는 것으로서 위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실화책임법의 위헌성은 제정 당시부터 있었던 것이라기보다는 그 후의 건축양식의 변화와 소방행정의 발달 및 관계법령의 정비 등 현실적인 상황의 변경에 의하여 발현된 것이라고 보여지고, 그 위헌성을 제거하는 방법도 다양할 것이므로, 입법자의 개선입법이 있을 때까지 실화책임법의 적용을 중지하는 헌법불합치 의견에 동의하면서 그 이유에 대하여 이와 같이 보충적으로 의견을 밝히는 것이다.
* 재판관 이공현, 재판관 송두환의 단순위헌 의견
실화책임법은 실화자를 지나치게 가혹한 부담으로부터 구제하려는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경과실로 인한 실화의 경우 실화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는바, 이는 다수의견도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실화자의 보호에만 치중하고 실화피해자의 보호는 외면한 것으로서 현저하게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수단의 선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실화책임법은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 정하고 있는 기본권제한입법의 한계를 일탈하여 실화피해자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헌법에 위반된다.
다만 이와 같이 실화책임법이 실화피해자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위헌으로 판단되는 이상, 헌법재판소로서는 실화책임법의 외관을 형식적으로 존속시키고 입법부의 개정입법이 있을 때까지 그 적용을 중지시킬 것이 아니라 단순위헌을 선고하여 실화책임법을 법질서에서 제거함으로써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단호한 태도를 취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다수의견과 달리 단순위헌 의견을 개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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