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G. Roberts Jr.의 대법원장 임명절차에 대한 감상
지난 9월 3일 William H. Rehnquist 대법원장이 지병인 갑상선암으로 사망하였습니다. 그는Nixon대통령에 의해 1971년 대법원판사로 임명되었으며, Reagan대통령에 의해 1986년 대법원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대법원장을 지명하는 절차는 미국인으로서도 실로 19년 만에 접하는 흔치 않은 일입니다.
연방항소법원(Court of Appeal, 4th Circuit)의 판사로 재직하던 중Sandra Day O’Connor의 사임 후 부시대통령에 의해 대법원판사로 지명되어 상원의 인준절차를 기다리던 John G. Roberts Jr. (이하에서는 Judge Roberts라고 칭하겠습니다)는 Rehnquist가 사망하자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되었습니다.
대법원장 지명 및 상원의 인준절차(Advice and Consent by Senate)를 지켜 보면서 대법원장 임명절차에서 제기되는 쟁점이 무엇인지, 그러한 쟁점들이 어떻게 다루어지는지를 간파해 보고자 나름대로 노력해 보았으나, 그리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대통령이 대법원장 후보자를 지명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대법원장 임명절차에 대한 미국인들의 관심도가 어떠한지, 상원의 청문절차에서 주된 쟁점은 무엇인지 등이 궁금했습니다.
우선 대법원장을 포함한 연방법원판사의 임명절차, 고인이 된 Rehnquist 대법원장에 대한 미국인들의 평가는 어떤지, 새로운 대법원장 지명자 Judge Roberts는 어떤 사람인지를 간략하게 살펴보는 게 여러모로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연방과 주의 권한배분을 핵심으로 하는 정부체제(Parallel System)를 반영하듯 법관임명절차 역시 연방법원과 주법원으로 크게 구분됩니다만, 연방법원 판사 임명절차는 District Court, Court of Appeal, Supreme Court를 구분하지 않고 대통령의 지명, 상원의 인준이라는 공통된 절차로 진행되며, 연방대법원은 대법원장을 포함하여 9명의 대법원판사로 구성됩니다. 몇몇 특수한 연방법원의 예외도 있지만, 연방법원판사는 그 임기가 평생동안 보장된다는 점도 특징입니다.
Chief Justice Rehnquist에 대한 평가는 아직 시기상조인 감이 많지만, 몇 가지로 대별되는 듯 합니다. 우선, 그가 미국역사상 가장 보수적인 입장을 일관되게 견지한 대법원판사(a solid conservative justice) 였다는 점에 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는 듯 합니다. 두번째로, 그는 연방정부와 연방의회의 권한을 축소 내지 한정하는 입장을 취해 왔습니다. 연방의회는 역사적으로 헌법상의 Commerce Clause(The Congress shall have Power to regulate commerce with foreign nations, and among the several States, and with the Indian tribes)에 근거하여 연방에 속한 모든 주를 구속하는 법을 상당 수 형성하여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연방대법원은 Gun Free School Zone Act(학교 주변에서 총기를 소지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를 포함한 연방의회의 이러한 입법권행사를 종종 위헌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셋째, 이러한 평가가 공통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가 점증하는 정치적 공격으로부터 연방대법원을 지켜내는 데 공헌 하였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미국 사법부 역사상 Rehnquist가 위와 같은 선명한 인상과 그에 걸맞은 위상을 가진 이상 그의 후임자로 지명된Judge Roberts에 대한 관심 역시 클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섣부르다고 할진 모르지만, 그가 이끌 연방대법원이 Rehnquist의 궤적과 전혀 다른 길을 모색하길 기대하는기는 어려울 듯 싶습니다. 공공연히 사법적극주의자(Judicial Activist)를 배제하겠다고 말해 온 부시대통령이 그를 지명하였다는 사실과 Judge Roberts의 실질적인 법조경력이 Rehnquist의 clerk에서 출발하였다는 사실을 논외로 하더라도, 지난 30여년간 그가 대변했던 보수적 입장을 나타내는 Paper trail에다 Reagan대통령 및 아버지Bush 때의 행정부 경력 등을 고려하면 그의 행보를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Rehnquist와 Judge Roberts의 이러한 성향을 고려해 볼 때 저의 첫번째 의문에 대한 해답은 그리 어렵지 않게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어느 대통령이라도 그러하겠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확고하게 지지해 줄 사람을 지명하는 것이지요. 혹자가 1930년대 대공황을 다양한 입법을 통해 타개하려고 했던 Roosevelt 대통령에게 재임 중 가장 큰 실수가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그는 주저하지 않고 내 가장 큰 실수는 두 가지 인데 두 가지 모두 지금 대법원에 있다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자신이 서명한 적지 않은 법률이 대법원에 의해 수차 위헌으로 선언되면서 정치적 곤경에 빠지자, 연방대법원판사의 정원을 확대해서라도 자신을 지지해 줄 대법원을 구성하고자 했던 사실을 돌이켜 본다면 익히 공감이 갑니다.
며칠에 걸친 Confirmation Hearing이 모두 생중계되고, 지명자의 Paper trail에 대한 평가를 놓고 여러 가지 논쟁이 제기되는 모습을 언론을 통해 지켜보면서 임명절차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우리보다 높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언론을 떠난 공간에서는, 심지어 대학에서도 활발한 토론이 벌어지는 것 같지는 않아 다소 싱겁다는 감도 받았습니다. 아마, Judge Roberts가 가진 보수적 성향으로 인해 자유주의자 진영의 반대를 예상할 순 있지만, 공화당이 상원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이 결론을 말해 주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이제 상원의 청문절차을 지켜보면서 느낀 점을 몇 가지 적어 볼까 합니다.
우선, 대법원장의 막중한 위상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보다 이러한 인식이 확고한 이유를 연방대법원의 사법심사권(Judicial Review)과 미국헌법의 간결함이 결합된 데서 찾는다면 지나친 단순화일까요? 아시다시피, 미국헌법은, 예를 들어, ‘free exercise of religion’, ‘due process of law’, ‘equal protection of law’ 등과 같이 매우 간략한, 다른 말로 그 함의가 불분명한 문장을 특징으로 하는데, 연방대법원은 이 간략한 헌법조항을 적용하여 수 많은 사건을 해석해 왔으며, 자연스레 연방대법원은 헌법을 해석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헌법을 형성해 왔던 것입니다.
둘째,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상원 의원들은 지명자가 숨겨둔 헌법형성의 밑그림을 들추어 보고자 하는 정치적 갈망을 느끼지만, 며칠 동안의 청문절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실제로는 여의치 않다는 점입니다. 의원들이 지명자에게 헌법해석에 관한 견해를 물으면 지명자는 자신이 그 질문에 답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종종 답변에 갈음합니다. 법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만 판결을 통해 답변할 수 밖에 없다면서, 만약 자신이 장래 사건화 되어 대법원의 판결을 받을지도 모르는 이슈에 대해 지금 답변을 한다면 오히려 무책임한 처사라고까지 이야기 합니다.
셋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Judge Roberts는 Paper trail이 많은 사람입니다. 문제는 과거의 문서에서 지명자가 옹호한 입장을 후보자의 자질로 곧바로 연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법률가의 문서는 대부분 client의 대리인(Advocate)으로서 작성한 문서이기 때문에 그 문서에서 그가 어떠한 입장을 취하였다고 하여 이를 그 자신의 고유한 입장으로 등치하기가 곤란하다는 점입니다. Judge Roberts가 미국정부의 대리인으로서 제출한 brief를 통해 낙태의 헌법적 권리를 인정한 Roe v. Wade판결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한 것을 두고, 자유주의자 진영은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저 역시 Judge Roberts가 낙태에 대해 일정한 개인적인 가치관(ideological agenda)을 가지고 있으며, 대법원장으로서 이를 실현할 것이라고 짐작은 하면서도, 법률가로서의 측면을 고려해 보면 이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지난 9. 22. Judicial Committee는 표결을 통해13:5로 인준에 동의하기로 결론을 내렸으며, 9. 29.경 상원 전체회의의 표결로 인준이 확정될 예정입니다. 3명의 Democrat가 Republican에 동조한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지명자는 정치적 입장을 떠나 재능 있는 법관이며, 현재 시점에서는 누구도 Judge Roberts가 17대 대법원장이 될 것이라는 사실에 의문을 표하지 않습니다. 낙태, 총기소지, 동성결혼 그 외 지금으로서는 예상조차 알 수 없는 숱한 헌법적 쟁점들이 Judge Roberts가 이끄는 대법원을 시험대에 올려 놓을 것입니다. 그가 이들에 관해 어떤 답을 할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그가 이끄는 대법원이 보수주의자 진영과 자유주의자 진영의 활발한 토론의 장이 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 봅니다. 이 점에서, 쉽지는 않으리라 넉넉히 예상되지만, 이번 인준과정에서 패퇴한 자유주의자 진영이O’Connor의 후임자 지명과정에서 건전한 swing vote를 탄생시켰으면 하는 바람도 아울러 가져 봅니다.
황승화 변호사(법무법인 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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