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 이소영 변호사◇
우리 회사는 정기적으로 공익강좌를 마련하고 있다.
어제의 초청강사는 바람의 딸 한비야씨.
내가 알고 있는 한비야라는 사람은, 서점에 넘쳐나는 여행기 중 좀 잘나가는 책을 쓴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 정도였고, 최근 월드비전의 긴급구호팀장으로 난민촌을 방문하고 있다는 소식은 그저 한 귀로 흘려버린 정보였다.
아프리카의 어느 오지를 걷던 한비야씨는 길가에 힘없이 앉아있는 모자를 보았다. 아기를 안을 힘조차 없는 촛점없는 눈빛의 젊은 아기엄마와 팔 다리는 쇠꼬챙이처럼 가늘고 배만 볼록 튀어나온 갓난아기의 모습은 언제나 보아왔던 흔한 풍경이었고, 그날도 그렇게 무심히 지나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저 멀리 뒤에서 그 엄마가 괴성을 질렀고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그 아기 엄마는 한비야씨에게 어서 빨리 와달라는 손짓을 했고, 머뭇머뭇거리며 다가갔을 때 그녀는 아기를 한비야씨에게 안겨주려 했다.
눈 주위에 까맣게 붙어있는 파리들, 입가에는 쓸개즙인지 뭔지 모를 거품, 이 아이가 내 손에서 죽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머뭇거리는 그녀에게 아기 엄마는 아기의 입을 가리키며 그 안을 보라는 간절한 몸짓을 보냈지만, 아기의 입 안을 보는게 두려워 계속 시선을 피하자 아기 엄마는 몸소 아기의 입을 벌려 보였다.
그리고 한비야씨가 본 것은, 아기의 잇몸을 뚫고 나온 하얀 이빨 두개였다.
엄마 자신조차도 포기하고 있었던 아기의 생명, 그 하얀 이빨을 본 엄마는 아기가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고, 그 현장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며 이 아이는 살거야 라는 희망을 나누고 싶었던 것이다.
한비야씨는 순간 이 아이를 꼭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아기를 엎쳐들고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병원으로 달렸지만, 아기는 5시간 후에 죽고 말았다. 사망 원인은 탈수증이었다. 800원짜리 링거 한병이면 살 수 있었단다.
한비야씨는 그 때 자신에게는 80만원이 넘는 돈이 있었건만, 800원에 한 생명이 피어나지도 못한 채 죽어갔다는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생사를 가로지르는 질병과 전쟁의 현장을 뛰어다니며 어린 아이들에게 죽을 어른들에게 씨앗을 나누어 주며 희망을 나누고 있다.
질투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며칠 전까지는 '비트겐슈타인은 왜'를 읽으며 나와 다른 차원의 삶을 살았던 천재들을 질투했고, 영화 모터사이클다이어리를 보면서 죽을 때까지 인간의 얼굴을 가지고자 했던 체 게바라를 질투했다. 그리고, 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과 꿈을 전염(말 그대로!) 시키고 있는 그녀의 지치지 않는 에너지와 믿음이 부러웠다.
그녀는 지금 4명의 자식들이 있다고 한다. 월드비전에서 일한 이후로 매년 1명씩 후원아동 결연을 맺었고, 앞으로도 매년 1명씩 더 결연을 맺을 예정이라고 한다.
그녀가 구호활동을 다녔던 마을의 아이들은 가족의 빚을 갚기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손바닥이 갈라지도록 실을 잣고 담뱃잎을 접는다. 갈라진 손을 치료할 약도 없다. 그렇게 번 돈은 고스란히 이자로 고리대금업자의 주머니에 들어간다. 그 아이들의 사전에는 꿈이라는 단어가 없다. 그 아이들을 가혹한 착취의 현장에서 빼오기 위해서는 한달의 2만원의 돈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그 2만원의 돈으로 가족들에게 염소나 소를 마련해주면 가족들은 이를 밑천으로 빚을 갚고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몇년전부터 월드비전을 통하여 미얀마의 아동을 후원하고 있다. 후원을 시작한 이후로 밥을 남기는 일이 죄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하던 친구의 권유로 가입하게 된 그 순간까지 난 솔직히 아무 생각이 없었다. 뭐 한달에 2만원 정도는 다른 사람을 위해 써도 되겠지라는 아주 단순한 생각에서 가입했기 때문에.
그런데, 가입 직후 나에게 이 아이의 사진이 날아왔다. 그때 난 당황했다. 이 아이의 눈이 너무나 맑아서, 그리고 후원이란 단순히 한달에 몇만원의 돈을 보내는 기계적인 일이 아닌 누군가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이라는 깨달았기 때문이다.
후원신청을 할 때만 하더라도 난 딱 2만원 정도의 책임만 익명으로 부담하겠다는, 그 이상의 책임도 죄책감도 연민도 느끼고 싶지 않다는 이기적인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아이의 사진을 본 순간 많이 두려웠다. 내가 따뜻한 방에서 배부르게 먹으며 이 아이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꿈을 가지라고 그러면 너의 소원이 이루어질 거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내가 이 아이에게 꿈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을까. 무책임한 격려 한마디로 나 이정도는 베풀며 산다는 가식적인 자기 만족을 얻으려는 건 아닐까.
아이에게 아무런 약속도 할 수 없었던 나는 이 아이의 감사편지도 뒤로 한채 그냥 꼬박 꼬박 매월 2만원의 돈만 보낸 채 어떤 개인적인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2년이 지났다.
어제 한비야씨의 강연을 들으며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리 강한 냉소도 희망을 이기지는 못한다는 것을. 그 희망의 씨앗이 아무리 작고 비천할지라도 무럭무럭 자라나 한공기의 밥이 되고 한 가마의 식량이 되고 너른 평야가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이 아이의 이름은 우 탄트 진, 이제 곧 8살이 되는 축구를 좋아하는 장난꾸러기 사내아이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편지를 써볼까 한다. 그리고 축구를 좋아하는 탄트 진과 그의 친구들을 위해 축구공을 보내줘야겠다.
오히려 나에게 꿈이 생겼다. 이 아이의 얼굴에서 어두운 그늘이 사라지는 걸 보고 싶은 꿈.
나에게도 아들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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