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칼럼

◇시간의 흐름과 법률관계◇

"세월이 약"이라는 말은 단지 실연을 당한 사람에게만 통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법에서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권리를 소멸하게도 하고 또 생성하게도 규정하고 있고, 특정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기간도 정하고 있습니다. 법률관계에 있어서는 "세월(시간)이 약"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번 달에는 시간의 흐름이 법률관계, 권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소멸시효

소멸시효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행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권리 그 자체를 소멸시켜버리는 제도입니다. 우리의 법률체계에서는 대부분의 권리는 이를 행사하지 않고 일정한 시간이 흐르면 소멸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즉, 일반적인 민사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하고, 채권과 소유권을 제외한 다른 권리들은 20년간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합니다(민법 제162조). 상(商)행위로 인한 채권(商事債權)은 행사하지 않고 5년이 경과하면 소멸합니다(상법 제64조). 하지만 모든 채권이 다 10년 또는 5년의 시간이 흘러야 소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보다 훨씬 짧게 1년만 지나도 소멸하는 채권도 있고(민법 제164조; 여관의 숙박료, 음식점의 음식료 등), 3년이 지나면 소멸하는 채권도 있습니다(민법 제163조; 의사의 치료비, 변호사의 보수 등). 또 다른 사람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채권도 3년의 단기소멸시효에 해당합니다. 다만, 이들 단기소멸시효에 해당하는 채권들에 대해서도 판결을 받아 확정된 경우에는 다시 10년이 지나야만 소멸합니다(민법 제165조 제1항).
따라서 다른 사람에 대한 금전채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시간의 흐름이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대법원은 가압류의 집행보전의 효력이 존속하는 동안은 소멸시효의 중단의 효력이 계속된다고 판시하고 있으므로(대법원 2000. 4. 25. 선고 2000다11102 판결), 채무자가 변제기가 지났는데도 돈을 갚지 않는 경우에는 채권이 소멸하지 않도록 최소한 가압류를 해 두어야 안전합니다.
한편, 소유권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소멸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타인이 내 소유권을 침해한 경우에는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다고 하여도 이를 다시 되찾아올 수 있습니다.

취득시효

소멸시효와 반대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물건 등을 일정기간 점유하는 경우에는 그 물건에 대하여 권리를 취득하는 제도입니다. 이 경우는 시간의 흐름이 "약"이 되는 경우입니다. 예컨대,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부동산을 20년간 점유하는 자는 등기함으로써 그 소유권을 취득하고(민법 제245조 제1항), 10년간 동산을 점유한 경우에도 소유권을 취득 합니다(민법 제246조 제1항). 하지만, 다른 사람의 소유라는 사실을 알면서 점유한 경우에는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시효취득이 인정되지 않으므로 소유권을 취득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물건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점유한 사람까지 보호해 줄 이유가 없고, 자칫 벌을 받게 될 위험까지도 있습니다. 형법 제360조는 다른 사람이 잃어버린 물건을 횡령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소기간의 제한

한편, 특정한 법률관계에 있어서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시기(제소기간)를 제한하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행정관청의 처분, 조세처분에 대하여는 처분이 있음을 안 날로부터 90일(행정소송법 제20조 제1항) 이내에 소를 제기하거나 행정심판을 제기하여야 합니다. 만일 위 기간이 지나도록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경우에는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행정처분의 취소를 구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와 관련하여 법원의 판결 또는 지급명령 등에 관하여도 불복할 수 있는 기간의 제한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즉, 법원의 판결이 부당하여 항소하려는 경우에는 반드시 판결서가 송달된 날로부터 2주 이내에 항소하여야 합니다(민사소송법 제396조 제1항). 그리고 지급명령을 받은 경우에도 2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하지 않으면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지게 되므로(민사소송법 제470조 제1항), 부당한 지급명령에 대하여는 위 기간내에 반드시 이의신청을 하여야 합니다. 간혹 지급명령을 받고서 상대방의 청구가 엉뚱하다고 생각하여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지나쳤다가 나중에 강제집행을 하는 때에야 비로소 당황하여 허겁지겁 대응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역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한편 형사판결에 대하여는 판결 선고일로부터 7일 이내에 항소하여야 하고(형사소송법 제358조), 벌금을 내라는 약식명령에 대하여도 역시 7일 이내에 정식재판을 청구하지 않으면 판결이 확정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합니다(형사소송법 제453조). 판결이 확정된 이후에는 정말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를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시간의 흐름은 대부분 권리행사를 제약하거나 소멸시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법률관계에서는 "세월이 약"이 아니라 "독"이 될 가능성이 많은 것입니다. 따라서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신의 권리가 어떤 영향을 받게 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한 후 대응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좋습니다. 묘수를 찾기 위해 심사숙고 하느라 시간만 보내다가는 시간초과로 실격패하는 낭패를 보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박영주 변호사(법무법인 지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