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획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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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산업기본법과 형사처벌의 문제


지난 7월 30일 헌법재판소는 건설산업기본법의 양벌규정에 대하여 위헌판결을 하였습니다. 직접 문제가 된 사건은 건설업등록증의 대여에 관련된 것이지만 건설산업기본법에 규정된 처벌조항과 관련해서는 그간 다양한 논의가 있어 왔고 그에 따른 개정 가능성도 있습니다. 위헌 판결을 받은 사안을 비롯해서 자주 논란이 되는 쟁점에 대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위헌으로 결정된 건설산업기본법 제98조 제2항의 내용은 "법인의 대표자, 법인 또는 개인의 대리인·사용인 기타 종업원이 그 법인 또는 개인의 업무에 관하여 제94조 내지 제97조의 위반행위를 한 때에는 행위자를 벌하는 외에 당해 법인이나 개인에 대하여도 각 해당 조의 벌금형을 과한다"입니다(실제 위헌이 선고된 것은 그 중 제96조 제4호 부분임). 위헌제청이 된 사건의 당사자는 가스시설 시공업을 주목적으로 하는 유한회사인데 그 회사의 대전지사장이 제3자로 하여금 회사의 상호를 사용하게 하고 시공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건설업등록증을 대여하였습니다. 검찰에서는 건설산업기본법의 양벌규정에 따라 행위자인 지사장을 기소하는 외에 위 유한회사도 기소하였습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단순히 종업원에게 잘못이 있다고 하여 법인에게 아무런 잘못도 없을 때까지 처벌하는 것은 법치국가의 원리 및 죄형법정주의에서 도출되는 책임주의 원칙에 반한다는 이유로 이러한 양벌규정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건설산업기본법의 양벌규정에 관한 위헌판결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유사한 규정이 있었던 '도로법'이나 '보건범죄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에 대해 이미 헌법재판소가 위헌판결을 한 예가 있기 때문입니다. 건설산업기본법에 대해 위헌결정이 내려진 날 '청소년보호법' 등 같은 내용의 양벌규정이 있는 법률 6개에 대해서도 동시에 위헌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양벌규정에 해당하는 경우에도 법인은 처벌받지 않게 되었고, 검찰에서는 이미 기소유예나 참고인 중지 등의 처분을 한 3만 건에 대해서도 무혐의 처분을 하겠다고 발표하였습니다. 이미 처벌을 받은 경우에도 법원에 재심을 청구하면 무죄선고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헌법재판소가 관련 조항을 위헌으로 판단한 것은 법인에 아무런 잘못이 없을 때에도 처벌을 받는 것이 책임주의에 위반된다는 것이기 때문에 향후 법인이 감독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경우에만 처벌한다는 내용으로 개정될 가능성은 있습니다. 현재 양벌규정이 있는 법률의 상당수는 법인이 그 위반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해당 업무에 관하여 상당한 주의와 감독을 게을리한 때에는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개정이 되고 있고, 만일 건설산업기본법도 이러한 내용으로 개정되는 경우에는 감독을 게을리했다는 사실이 증명되면 처벌받게 됩니다.

건설산업기본법 상의 벌칙 조항과 관련하여 자주 문제되는 또 하나의 쟁점은 심사평가위원들에 대한 금품 제공의 문제입니다. 건설산업기본법 제38조의 2는 "도급계약의 체결 또는 건설공사의 시공과 관련하여 발주자, 수급인, 하수급인 또는 이해관계인은 부정한 청탁에 의한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공여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95조의 2는 위 규정에 위반하여 부정한 청탁에 의한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공여한 사람을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위와 같은 조항에 의해서 처벌되는 행위는 발주자, 수급인, 하수급인 또는 이해관계인이 도급계약의 체결 또는 건설공사의 시공과 관련하여 스스로 영득하기로 하는 명목으로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그와 같은 명목으로 이를 공여하는 행위에 한정되고, 그와 달리 발주자 등의 사용인 기타 종업원 등이 개인적으로 영득하기 위하여 배임수증재적 명목으로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그와 같은 명목으로 이를 공여하는 행위는 위 조항에 의하여 처벌되는 행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평가위원은 단순히 발주자의 사용인에 해당할 뿐이기 때문에 평가위원이 금품을 수수한 행위를 건설산업기본법 상의 처벌조항에 의하여 처벌할 수는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09. 5. 28. 선고 2009도988).

다만 대법원은 평가위원에게 부정한 청탁을 하고 금품을 제공하는 행위는 형법상 배임증재죄에 해당한다고 판결하였습니다. 위 사건에서 입찰참가업체는 평가위원 후보자들과의 사전 접촉이 금지되어 있었음에도 평가위원 후보자 별로 전담직원을 정하고 그 전담직원들이 심의 전날까지도 수차례 후보자들을 찾아가 설계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선처를 부탁하였습니다. 또한 심의 당일 새벽에 후보자들에게 전화를 하여 평가위원으로 선정되었는지 확인한 후 다시 좋은 점수를 달라고 청탁을 하였으며, 그 후 평가위원으로 선정된 개인과 용역 계약을 체결하여 금품을 제공하였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용역 계약 체결은 부정한 청탁에 대한 대가로 보아야 하고 따라서 입찰참가업체의 임직원들이 형법상의 배임증재죄를 범한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형법상의 배임증재죄로 처벌받는 것과 건설산업기본법 위반으로 처벌받는 것의 실제적인 차이는 양벌규정의 적용여부입니다. 건설산업기본법과는 달리 형법에는 배임증재죄가 성립하는 경우에도 양벌규정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대법원 판례에 따를 경우 심사평가위원에게 금품을 제공하더라도 법인에 대한 처벌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위 판결 선고 이후 언론 등에서는 심사평가위원에게 금품로비를 하더라도 법인이 처벌받지 않는 것에 대하여 많은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기업이 발주하는 공사의 입찰 심사를 맡은 평가위원을 공무원으로 의제하여 뇌물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여론도 높습니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심의위원에 대한 로비 사건 등을 고려할 때 이러한 개정 여론은 현실화될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입찰 과정에서 투명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나가야 할 것입니다.